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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국회의원 나이 고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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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것 같다.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말해 논란이 됐다.이에 황규환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장관은 예고된 부분 이라는 천하태평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송영길은 1963년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출생으로 올해 나이 58세이다.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일본학과를 졸업했으며,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했다.


16, 17, 18, 20, 21대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소속이며 정계 입문 이후 줄곧 인천광역시를 지역 기반으로 정치 생활을 했다. 인천광역시에서 손꼽히는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인 계양구 을 지역구에서만 5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바 있으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해 제13대 인천광역시장(민선 5기)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후 84년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도중 투옥되게되고, 출소 후에는 인천지역에서 고 노회찬의원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하며 택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소련 공산주의권이 붕괴되자 노동운동가들은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를 지켜본 송영길은 1991년 소련과 동유럽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온 송영길은 재야 노동운동보다 제도내 개혁에 뛰어들기로 결심, 1992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택시노련에서는 송영길의 결심에 대한 찬반표결을 결정할 정도로 그의 당시 영향력은 컸다고 전해진다.


1994년, 송영길은 2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한 끝에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1997년에는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다시 투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한 것을 비롯, 전국민주택시노련 고문변호사, 인천 계양구 건축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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