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문세광 프로필 고향 국적 8.15 저격사건 육영수

반응형

문세광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식 통명은 난죠 세이코이다.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문세광은 1951년 12월 26일, 일본 오사카에서 석면 제조업자인 아버지 문병태와 어머니 육말란 사이에서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상남도 진양군 대평면 상촌리 3-24

오사카의 구와즈 소학교, 히가시스미요시 중학교를 거쳐 세이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했다. 재학 당시 성적은 뛰어나지 못했으나 학급위원, 생도회 부회장 등 과외활동에는 적극적이었고, 학원 분규나 정치 활동에는 큰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동맹 휴학 등 저항운동을 주도했고, 다른 학교의 데모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

학교 중퇴 후 활동을 시작한 것은 조총련이 아닌 민단 산하의 청년조직인 "한청"이라는 단체였다. 다만 당시 한청은 1972년 거류민단으로부터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반정부 과격단체라는 이유로 취소를 당한 불법단체였다.


문세광은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 인질극을 벌이고 폭발테러를 벌이자고 한청 중앙본부 부의장인 김군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2005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따르면 김군부는 이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1년후 민단계 언론인 통일일보에서 이 편지가 공개되었다. 한청본부로 보내려던 이 편지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던 민단에 보내졌고, 민단은 주일 한국대사관에 이 편지를 보냈고 중앙정보부도 이 편지를 입수해 문세광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문세광은 1974년 지인인 요시이 미키코의 남편 요시이 유키오의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 받아 방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던 국립극장에 들어가 일본인 초청자임을 빙자하고 잠입하였다.기념사를 낭독 중이던 박정희를 향해 총을 발포하였지만 재빨리 연설단 밑으로 피하며 저격에 실패. 현장에서 긴급체포되어 조사를 받았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1974년 12월 20일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향년 22세의 나이로 처형 되었다.

반응형
교차형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