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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임 프로필 이강국 아들 조선의 마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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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임은 일명 조선의 마타하리로 유명했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인텔리 신여성으로 영어 회화에 능숙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군정 시절 군정청에서 일했으며, 미 육군 장교였던 베어드 대령과 결혼을 전제로 동거한다. 이는 당시 김활란과 모윤숙이 세운 단체인 낙랑 클럽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미인계를 위한 호스티스 클럽이었던 이 낙랑 클럽은 영어 능통의 조건과 지도부의 영향으로 이화여전 소속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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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 대령과 동거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연인으로는 리강국이 널리 알려져 있다. 김수임은 리강국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겼고, 나중에는 베어드 대령의 차에 태워서 월북을 돕는다. 훗날 이 사실이 밝혀지며 김수임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6.25 전쟁 발발 직전에 사형당했다.

하지만 그녀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수 없었다는게 문제. 그녀에 대한 수사,재판기록은 원래대로라면 영구보존대상이라 남아있어야 하지만 6.25 전쟁의 여파인지, 아니면 조작사건임이 드러날까 누군가가 파기한건지는 몰라도 현재 전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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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그녀와 관련된 기록은 미국쪽에 남아있는데, 김수임의 체포후 미국이 베어드 대령을 조사해 기밀이 유출되었는지 파악했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미국 문서에는 김수임에 대한 고문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고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을 집필한 오재호 작가가 당시 김수임을 조사한 육군 방첩대 수사관들을 취재한바에 따르면 김수임에게 끔찍한 고문이 가해졌는데 스토브에 쇠꼬챙이를 넣고 달군뒤 그걸로 국부를 찔렀다고 한다. 이런 참혹한 고문에 김수임이 수사본부에서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었을때는 자기 발로 걷지 못하고 한밤중에 리어카에 실려서 옮겨졌다고 한다. 의사의 치료를 받긴 했다지만 그 치료의 수준이라는게 상처에 빨간약을 발라주는 수준에 불과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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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수임에 대한 재판과정도 문제였는데 민간인인 김수임이 군법재판에서 재판을 받은것, 재판 기간이 불과 3일뿐이었단것도 의혹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수임이 군법재판에 회부된것과 사형선고에 법적인 근거가 있었는지 조차도 의문이다. 또한 당시 수사관들은 김수임이 리강국의 권총을 맡아두고 있었다며 간첩의 증거로 군법재판에 제출했지만, 이 권총은 오히려 군법재판에서 증거채택이 보류되었다. 당시 김수임을 변호하던 변호인측이 이 권총은 리강국의 것이 아니라 베어드의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한게 받아들여져서 였다고. 물론 자백이라는 가장 큰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이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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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리강국은 베어드에게 간첩자료를 넘겨 미국의 간첩이었단 혐의로 나중에 북한에서 처형되었는데, 실제로 베어드를 조사한 미국측 기록에는 오히려 베어드가 리강국을 통해 북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며 다른 기밀문서에선 리강국이 CIC, 미군방첩대의 협력자였다고 나와있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리강국을 베어드 차에 태워 탈출시켜 북으로 보낸 일은 김수임의 단독행동이 아니라 최소 베어드의 묵인하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한동안 그녀에게는 별명처럼 스파이며 요부 혐의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2001년 리강국이 실제로 미국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김수임 역시 스파이가 아니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김수임의 아들 김원일 씨는 어머니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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