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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중 프로필 교수 의사 실화탐사대

레인맨00 2024. 10. 25.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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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중 프로필 교수 의사 실화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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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중은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대학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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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생으로 1993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2001년부터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고 교수가 삼성서울병원에 둥지를 튼 이유는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분야 임상연구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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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 왔다. 대부분 주도적으로 300여편의 논문을 썼고 180편의 SCI논문을 게재했다. 논문 개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후배들을 학문 분야에 입문하게 했다는 평가다. 2014년에는 '제12회 화이자의학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결핵 퇴치에 헌신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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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는 삼성병원에서 18년간 일해오다 2019년 5월부터 진료를 잠시 쉬었으며 2019년 9월부터 아주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송별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2019년 8월 21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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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탐사대 고원중 교수 죽음 재조명 
2022년 6월 ' MBC 실화탐사대'가 고원중 교수의 극단적 선택을 재조명했다. 방송에서 고원중 교수는 호흡기내과 교수들과 호흡이 잘 맞으며 지냈지만, 2010년 이후로 따돌림을 당했는데 특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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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전염 때문에 병원을 부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고원중 교수는 분과장이라 병원과 정부의 지침을 전달하고 외래를 닫아야했다. 하지만 병원 방침을 거부하고 외래를 열겠다고 주장하는 선배 교수들과 마찰이 시작됐다. 당시 선배 교수들은 고원중 교수에게 논문 좀 쓴다고 자신을 무시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동료 의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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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고 교수 한 명뿐이었다.'돈이 안 되는' 이 분야의 연구가 병원으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줄곧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왔기에 그에게 환자들이 몰렸고 환자의 편에서 실적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진료를 해왔다. 그는 병원을 상대로 "전담교수 1명을 더 뽑아 같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인력 지원을 건의하며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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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원중 교수는 병원에서 엄청난 업무량으로 쉬지 않고 일해 허리통증을 달고 생활했으며 지속된 설득으로 어렵게 해당 분야의 후배의사를 충원받았지만 병원에선 전공하지 않은 진료까지 시키자 고 교수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일을 해야하는 후배 교수에 대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하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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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제출하고 2개월 후 새로운 병원의 이직이 결정됐다. 문제가 된 건 2019년 환송회였다. 그런데 약속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료 교수들은 약속 시간보다 10~20분 늦은 시간이 되어야 도착했고. 환송에서도 따돌림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고원중 교수는 모멸감과 수치심에 환송회에서 받은 공로패를 집에 챙겨가지 않았다고 한다.결국 고원중 교수는 환송회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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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의 유족들은 "그가 (돈이 되는) 암을 진료하는 의사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인이 생전 만성 과로에 시달렸고 괴롭힘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2019년 12월16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뒤늦게 그의 추모식이 열렸지만, 병원 측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라 유족 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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