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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오종렬 의장 별세 빈소 장례식장 영결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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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전날 7일 오후 10시 57분께 향년 81세나이로  사망했다.오 의장은 한국 진보운동 최전선에서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자주 통일을 위해 활동했다.

고인은 1938년 11월 전남 광산군 출생으로 광주사범대학을 나와 교원으로 부임해 교단에 섰다.
이후 초·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1987년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대의원대회 의장에 선출됐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전교조의 전신)의 출범에 가담, 이후 전교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89년 전교조 관련자로 구속되었다가 수개월만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제1대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했다. 시의원 재직 중 교육 분야 개혁안을 발의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는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강연, 칼럼 기고 활동 등을 했다. 2002년 경기도의정부에서 주한미군 탱크로 여중생 2명이 사망하자 그해 11월 효순 미선 살인사건때 여중생 범대위를 지도하였으며 노무현 탄핵때는 보수정치인에 대항하여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

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 2005년 반 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참여 정부에서 농민운동을 탄압하자 전용철농민살해범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2006년말 노무현 정권에서 한미 FTA를 강행하려 하자, 한미 FTA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그 뒤 2008년 5월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린다. 조문은 8일부터 10일 오전 8시까지 받는다.

9일 오후 7시에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추모의 밤'을 연다. 10일 오전 8시 발인 후 서울시청 광장까지 운구행진을 하고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엄수한다.

영결식이 끝나면 광주로 운구해 조선대학교 병원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려 오후 4시부터 11일 오전 8시까지 광주 조문을 받는다.

광주 추모의밤은 10일 오후 8시 조선대 병원장례식장 앞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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