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숙은 1954년 전남 영광군 출생으로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형도 세상을 떠난 뒤부터 본래 가난했던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한다. 그는 홀어머니와 남은 동생들을 잘 돌보는 효자였다고 그를 알던 주위 사람들은 그를 기억한다.
가난으로 인해 가족이 흩어지면서 어머니와 막내동생은 절로 가서 수발을 들며 허드렛일을 하며 연명했고, 그의 여동생은 남의 집의 식모로 일을 하며 살게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박흥숙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그의 최종 학력은 국민학교였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에 광주시내에서 열쇠수리공으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인지, 주경야독을 하여 다섯달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그의 여동생과 그의 일기는 증언했다.
검정고시로써 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한 그는 곧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이때 그가 자신의 거처로 삼은 것이 무등산이다. 그는 무등산 산자락으로 들어가서 움막집을 세우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았다. 당시 무등산 자락 주변에는 스무여 가구가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1977년 4월 20일 이 날 광주시 동구청 소속의 건설반장인 오종환 반장과 철거반원 일곱 명이 무등산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중 박흥숙과 시비가 붙었다.철거반원 중 일부가 박흥숙 어머니를 밀치며 욕을 했기 때문 처음엔 철거반이 가재도구를 모두 움막집 바깥으로 옮길 때 박흥숙도 그들과 함께 가재도구를 옮기면서 철거를 협조했다.하지만 철거 반원들이 집에 불을 지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본 박흥숙은 엄청난 적개심과 분노에 사로잡혔고 이에 항의하자 철거반장 오종환은 "어린놈이 지랄한다."라며 박흥숙을 깔보았고, 더욱 분노한 박흥숙은 철거반장 오종환을 향하여 자신이 만든 사제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
총을 든 그는 철거반장에게 부하 반원들을 모두 모으라고 위협을 가하여 철거반원 7명 중 5명이 불려왔고, 박흥숙은 여동생에게 지시하여 철거반원들을 묶게 하였다. 당시 그가 이들을 결박한 이유는 이 사람들을 결박하여 도망가지 않게 한 뒤 그는 스스로 시내로 가서 당시의 광주시장에게 따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박흥숙은 포박한 철거반원들을 자신의 공부방으로 파 놓았던 구덩이에 넣은 다음, "불태운 우리 집에 사과해라"라고 호통을 쳤는데, 이 와중에 철거반원들은 마침 헐겁게 묶여 있던 포박을 풀고 반항하였고, 박흥숙은 망치로 그들을 공격해서 5명 중 4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살인을 저지른 박흥숙은 놀라서 도주했고, 박흥숙의 여동생은 시내로 내려가서 광주 시청으로 가서 시장을 만나려 했으나 시장은 만나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시청 직원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한 뒤 없어진 집터로 갔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공무집행방해죄, 여동생은 살인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무등산에서 하산했다.
박흥수의 행방이 묘연해진 그를 찾기 위해 경찰은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박흥수는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제 발로 중앙정보부를 찾아아 자수했다. 당시 그를 체포했다던 경찰의 보도내용과 달리 박흥숙은 자수를 했고, 실제로 광주지방경찰청창이 받은 보고에는 그가 서울방향으로 도주한 후에 중앙정보부에 자수해서 검거됐다고 되어있다.
박흥숙이 진술한 바로는 광주에서 여수로 가는 기차안에서 북한의 간첩으로 의심되는 말을 쓰던 정모씨가 간첩임을 확신하고 간첩신고를 하러 서울의 중앙정보부를 찾았고, 더불어 자신이 광주 무등산에서 살인을 저지른 박흥숙이라고 자신의 신명을 밝히며 자수도 했다고 한다. 이후 중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받고 검거, 즉 자수를 하여 연행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박흥숙의 진술에 의한 것이다.
박흥숙은 1977년 7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살인, 총포화약류단속법 위반, 산림법 위반, 건축법 위반 혐의를 받았고 그는 순간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을 깊이 뉘우치며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상고 끝에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집행일을 기다리며 광주교도소에서 2년째 복역 중 1980년 12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5년에 무등산 타잔 박흥숙으로 영화화되는데 박흥숙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후반부에 맨손으로 철거반원들을 폭행, 살해하는데 이건 사실과는 다르며 실제로는 둔기를 썼다.여담으로 영화 판촉과정에서 포스터의 문구가 전라도를 비하했다고 명예훼손 혐의를 받았다.